linkedin email
욕망의 조각 2 : 공짜 점심은 없다
Oct 10, 2018
10 minutes read
* 주변인들이 겪은 일들을 재구성하여 집필하였음을 명시합니다.

당시 상황의 시작은 랩장의 대화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는 않는다. 내가 랩을 들어오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OO 씨(나),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십시오."

나는 그저 랩장을 바라보았다. 문장으로만 보면 명령조가 아닐까 싶지만, 랩장의 표정과 억양은 부탁 아니 차라리 간절함에 가까웠다. 랩장이 다시 말을 잇는다.

"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거 알아요. 지만 지금 상황에서 교수님을 설득할 방법은 없어요."

"......"

"힘드신 거 알아요. 그냥 정신 놓고 가만히 듣고 오시면 그걸로 끝날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파악한 교수님은 돈을 뱉어내라고 할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너무 많이 간 거예요. 저를 믿어봐요. 저도 여기 있은 지가 몇 년이에요. 온갖 일을 다 겪어봤어요."

"글쎄요..."

"앞으로 남은 기간 학교에 다녀야 하잖아요.1 어차피 그를 막을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대립각을 세우게 되면 그건 랩을 나가냐 마냐의 문제로 번질 수가 있어요."

"하아..."

깊은 한숨이 나왔다. 랩장도 이해는 간다. 어차피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빨리 넘기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랩장의 말대로 하기에는 너무 싫었다. 랩장의 방식대로라면 결국 나의 의지를 에게 갖다 바치는 꼴과 다름이 없다.

나는 한 번 잘못하면2 주홍글씨처럼 낙인을 찍어버리는 의 방식을 너무 잘 안다. 갈등 이후에 겉으로는 다 털어놨다는 듯이 행동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유리한 고지를 위해서는 구석 장독대에서 된장 푸듯 계속 들먹일 것이 뻔하다. 또한 의 뜻대로 해줬을 때, 앞으로 의 '원래 그랬고, 당연히 그랬고, 그게 맞다'는 주장의 선례로 활약할 것이니, 의 마음 한쪽 편에서는 기쁨마저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아... 다시 한숨이 나온다. 아, 어떻게 해야 할까. 깽판을 치고 싶은 마음이 물 끓는 주전자 뚜껑처럼 계속 치고 올라왔지만 랩장의 생각하자니 차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미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까지 고민하고 있다니, 나도 꽤 유약해졌나 보다.

말만 들으면 이게 내가 무슨 횡령한 거 같지만 여기서 뱉어내야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장학금이다.

내가 받았던 장학금은 대학원생이 학생들의 질문을 대답해주는 튜토링을 진행하고 받는 장학금이었다. 일주일에 6~8시간 동안 지정된 공간에서 앉아있으면서 학생들이 질문하러 왔을 때 아는 만큼 대답해주는 것이 조건이었다.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니 장학금도 많이 주고 질문하러 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서 시간도 별로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때 당시에 나는 대학원 수업 조교를 하고 있었고 이것저것 잡무들도 있었기에, 단순 업무(조교, 행정 처리, 과제 보고서 등)를 해당 시간에 같이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성적이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장학금을 수여하였다.

실제로 학생들의 질문은 많지 않았다. 항상 연구실에 박혀 있었던지라 다른 랩의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기회가 있었고, 자주 오는 학생들과는 친분도 쌓을 기회가 되었다. 거기에도 잡무도 같이 진행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닌가. 그렇게 나는 저번 학기에 장학금을 수여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교수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 는 그것이 매우 잘못된 행위라고 했다. 는 나에게 '연구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간에 연구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한다.

시간을 쓴 거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싸잡아서 까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 안 했다고 하기에는 주말에도 나오고 10 to 10도 했는데, 그 비중을 따져보았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에 살짝 모욕감을 느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 제대로 못 할 바에 아예 시작도 안 한 적은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내가 당신의 근로자도 아닌데, 좀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조언하듯 얘기해주면 좋게 않았을까.

하지만 의 질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니, 는 나에게 두 가지를 더 말했다.

  1. 반성문을 써서 오늘 내로 제출할 것.
  2. 이번 학기에 랩에서 주는 수당을 장학금 받은 만큼 깎을 것.

아, 랩장님아... 제 말이 맞죠?

반성문을 쓰란다. 내 나이 29, 생애 첫 반성문을 처음 써보게 되었다. 여기가 서울대학교인지 서울중학교인지 순간 헷갈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수당을 깎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내가 취직을 한 것도 아니고 삶에 보탬이 되고자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겠다고 신청해서 받은 것뿐인데, 그게 과제를 수행해서 받는 수당이랑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당신의 추천서가 필요한 장학금이라면 십분 이해하겠다만, 이건 추천서도 필요 없는 장학금인데 왜 당신이 장학금의 액수를 들먹이는가. 아니, 잘잘못은 따져가며 해야지 (애초에 본인이 이를 잘못으로 규정한 것도 따져봐야 할 거 같지만) 이것만 보면 내가 정말 무슨 과제비를 횡령한 것처럼 되는 것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장학금인데.

당장에라도 따지고 싶은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다. 아... 하지만 랩장의 부탁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별말 없이 교수실을 나왔다. 이를 악물며 몸 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뜨거움을 안으로 삼켰다.

"XX 씨(랩장), 님이 틀렸어요."

"네?"

뭐 어쩌겠나. 당장 나가라고 하지 않은 것으로 위안으로 삼아야지.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으려나. 행정을 담당하는 ㅁㅁ 씨가 나에게 말한다.

"OO 씨(나), 무슨 일 있어요?"

"왜요?"

"교수님께 메일이 왔는데, 거의 절반으로 과제 참여율 낮춰서 수당을 깎으셨던데? 여율이 다 합해서 100이 안돼요. 이런 경우는 과제 끝날 때나 정도밖에 없는데 OO 씨는 그냥 깎은 거던데... 이러면 월 100만 원도 못 받는데 어떻게 살아요?"

"아, 그게 10분도 안 돼서 오는 거군요? 미리 다 준비하고 있었단 거네. 미팅은 그냥 통보하기 위한 거였고. 혼자서 히죽히죽거리며 승리의 메일을 보내느라 좋았겠어. 아이고~ 반성문이나 써야겠다."

는 기어이 4개월 동안 나에게 320만 원 상당의 금액을 못 받게 하였다.

• • • • • • • • •

이것이 차라리 괘씸죄였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학생들의 장학금은 에게 있어 또 다른 수입 모델에 불과했다. 내가 있던 랩에는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있는데, 이번 사연은 바로 한 중국 유학생의 이야기다.

그녀는 서울대가 아닌 다른 국내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이번에 서울대 박사과정으로 들어왔다. 오랜 기간 한국에 있어서인지 그녀는 한국어를 꽤 잘했다. 원어민까지는 아니었지만, 천천히 대화하면 나름 토론도 할 수 있었으니 대충 어느 정도의 느낌인지 아시리라.

하지만 그 아무리 좋다라는 곳에 가도 유학생의 삶은 고단한 법이다. 집도 없고, 연고도 없는 와중에 문화도 모르는 상황이니, 타지에서 삶을 최적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하니 외국인 생활을 할 때는 여기에 속한다는 생각보다 어디까지나 외부인이다 혹은 항상 적응 중인 상태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3 뭐라도 하나 문제 생기거나 혹은 불편함을 겪게 되면 이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손실도 큰 편이다. 그러니 석사도 마치고 거기다가 박사까지 한국에서 한다는 것은 그녀의 의지가 얼마나 크고 노력이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녀는 석사 때 꽤 좋은 결과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석사 학위를 통해 외국인 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신청하고 이를 수여하였다. 비록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매달 소정의 비용을 주니 어떻게든 유학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따로 발표를 준비하거나 추천서를 받을 필요 없이 그저 자신의 학위와 학위논문이 있으면 신청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아마 장학금의 목적은 타지 생활이 어려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근로 장학금처럼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으니, 대학원 생활에 한 줄기의 빛 혹은 한 줌의 소금이라.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가 알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는 이 사실을 알고 크게 화가 났다. 비록 자신의 추천서도 필요 없고, 심지어는 여기서 받은 학위도 아닌 다른 곳에서 받은 석사학위로 받은 장학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몰랐던 그녀의 수입에 대해 '어디서 감히'라는 마음이 들고 만 것이다. 그리고는 역시나 이번에도 장학금을 받은 금액만큼 수당에서 깎는 단죄를 내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녀는 즉각 반박했다.

  1. 현재 하고 있는 박사과정과 상관없는 다른 대학에서 받은 석사학위를 통해 받는 장학금이라는 점.
  2. 교수님의 추천서로 인해 받은 것도 아닌 개인이 신청해서 받은 장학금이라는 점.
  3. 그 어떠한 대가성도 없이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랩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라는 점.

는 1번과 2번에 대해서 장학금을 받는 것이 다른 랩 학생들에게는 불공평한 일이라고 하였다. 다들 비슷한 금액을 받고 있는데 혼자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오 이런, 다시 한 번 180/250만 원 논리4가 고개를 들고 말았다. 솔직히 이쯤 되면 가 생각하는 공평이란 무엇인가 의문이 강하게 들기 마련이다. 아니 석사 때 잘해서 받는 건데 그걸 누가 불공평하다고 하는가. 오히려 어느 누가 불공평하다고 한다면 오히려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3번에서 는 다시 한번 '어디서 감히'라는 마음을 느끼고 말았는지 더 심술이 발동해버렸다. 는 그녀와 함께 있는 그 자리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더니 식비 하며, 월세 하며, 생활비 등을 묻기 시작했다. 그렇다. 는 지금 그녀가 한 달 동안 드는 비용을 하나하나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각 항목에 대해 '너무 많이 쓰고 있다.', '집세가 너무 많이 나간다.' 식의 말을 하며, 자신이 주는 돈이 적은 것이 아니니 이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 무분별한 행동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누가 재무 상담을 부탁했나. 그녀가 얼마를 쓰든 말든 그건 그녀가 알아서 할 일이고, 이건 엄연히 사생활 침해다. 우리가 당신이 월 4000만 원을 벌어가도 어디에 쓰는지 굳이 따지지 않듯이 당신도 그녀가 정당히 받는 돈에 대해서는 따로 추궁할 이유가 없다. 생각건대 이 정도로 남의 이득에 시기심을 느낀다면, 대학원생이 로또가 당첨되어도 자신의 허락도 없이 로또를 샀다며 돈을 내면서 다니게 할 것이다.5 그래야 가 말한 공평함과 가난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배가 부르면 연구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니까 말이다.6

그녀는 억울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매번 미팅마다 언급할 것이고, 꼭 장학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 • • • • • • • •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랩을 떠나온 나로서는 다음 소식을 알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진행 중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때의 나처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참고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되든 간에 그녀의 괴로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는 앞으로 그녀와 어떠한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언급할 것이고, 그것을 볼모로 활용할 것이다. 그녀 또한 랩에 갈 때마다, 그리고 를 만날 때마다 이 일이 떠오를 것이고, 내면의 분노는 이를 먹고 자랄 것이다. 그녀는 가 시키는 일 하나하나에 불만이 생길 것이고, 는 그녀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을 것이다. 깨져버린 그녀와 의 신뢰는 서로에 대한 의혹과 의심을 만들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배로 증가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신뢰를 더더욱 무너뜨리고 말 것이니, 결국 그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악순환이 이제 막 시작된 것뿐 임을 나는 안다.

이 문제는 점점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리고 말지어니, 우리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인가 아니면 싸우기 위해 모인 것인가 헷갈리다 마침내 목적을 잃고 그저 서로 물리쳐야 할 괴물이 된다. 물론 한쪽은 대마왕이고 다른 한쪽은 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용사지만 말이다.


  1.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만 해도 참 희망적이었던거 같다. [return]
  2. 애초에 잘못인건 중요하지 않다. 갈등만 빚으면 되는 거다. [return]
  3. 물론 마치 10년 넘게 산 사람처럼 완벽하게 여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return]
  4. 석사는 180만 원 박사는 250만 원을 넘게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만의 논리다. [return]
  5. 물론 돈을 내게 하지는 못하고, 앞으로의 회식을 해당 대학원생이 내게 하는 등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return]
  6. 실제로 어떤 교수는 가난해야 학생들이 연구를 잘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마땅히 과제 참여로 인해 받아야할 수당보다 적게 준다.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