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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람의 장막
Mar 5, 2018
6 minutes read
* 주변인들이 겪은 일들을 재구성하여 집필하였음을 명시합니다.

전화기에서 제일 자리가 가까운 OO 씨가 전화를 받는다.

“네, 교수님.”
”(미세하게 들리는 목소리)”
“네네, 알겠습니다.”

그가 수화기를 내란다. 랩 구성원 모두가 OO 씨를 바라본다.

“어… XX 씨 오라는 데요?”
”???”

내가 아니다. 이번에 석사 졸업하는 XX 씨를 부른 것이다. 기묘한 기류가 흐른다. XX 씨도 의아해한다. 지금 그를 부를 이유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갈 수는 없으니 XX 씨가 간단한 노트와 펜을 들고 의 사무실로 향한다.

뭘까. 지금 상황에서 가 더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냥 나랑 관련된 건 아니고 다른 일로 부른 것은 아닐까. 어차피 나와의 문제지 XX 씨와 어떤 걸 할 일은 없잖아. 하지만 절대 이런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에, 앞으로 모든 학생에게 감히 석박에서 석사로 바꾸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가 절대 가만있을 사람도 아니다.

으… 한계다. 더 이상 경우의 수를 찾지 못하겠어!

XX 씨가 돌아왔다.

다시 랩 구성원 모두가 XX를 바라본다. XX 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형(나), 교수님이 저에게 석사 수료 때 필요한 서류들을 물어봤어요.”
“그렇군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고 안달이 났군.

“근데 저도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랬더니 혹시 졸업하면서 제출한 서류들이 뭐가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네에…?”
“그래서 우선 아는 만큼 대답하긴 했는데, 영 불안하네요. 형, 정말 수료 조건 이미 만족하는 거죠.?
“제가 아는 한 그래요. 제가 행정실에 문의했을 때느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
“미안해요. 지금 당장 어딜 가봐야 해요!”

랩 문을 박차고 나간다. 밖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ㅁㅁ 씨를 마주친다.

“교수님과 말씀은 잘 됐어요?”
“나중에!”

씨발. 그렇지, 씨발.

지금 이 모든 상황의 승패를 판단하는 곳. 나를 수료를 시키느냐 마냐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곳. 바로 행정실이다.

나는 그곳을 사수해야만 한다. 가 오늘 접수된 서류 중에 내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 아, 더 빨리 내야 했는데… 아 제발. 아냐, 그랬어도 모른다. 어떻게든 오늘 마감까지 나는 지켜야만 한다! 지켜내기만 하면 된다!

계단을 다다다닥 내려가고 내려간다. 더 빨리! 중간중간 점프하며 넘어질 듯 말듯 달려 내려간다. 제발… 제발!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쿵! 띠리띠리띠링 띠리링..

행정실 문 위에 걸려있는 종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는 없다. 아니, 어차피 는 오지 않는다. 자신에게 제일 빠르고 편한 방법, 전화할 것임이 분명하다. 난 의 전화를 저지해야 한다. 졸업을 담당하는 분 앞으로 간다.

“잠시만요, 정말 급해서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줄 서 있는 학생들을 제치며 담당 직원분 앞에 선다. 담당 직원이 나의 민폐 짓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곧 전화가 올 거예요. 제가 있다고 하지 마시고, 이미 수료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이 앞뒤 자른 말에 직원분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아직 전화가 온 거 같지는 않다. 후우… 숨을 한 번 고른다. 그리고 입술을 떼려는 순간,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이거다! 분명 이거다! 이거다!!!

직원이 손을 뻗으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아, 제발 내 말을 먼저 들어주세요.

“네, 교수님 (···)
수료제도요? 네, 수강 요건을 만족시키면 되는 거예요. (···)
네, 따로 제출할 서류는 없고, 수강 요건만 만족시키면 되는 거예요 (···)
네, 수료는 자동으로 되는 거예요. 따로 더 하는 건 없습니다. (···)
네, 제출은 오늘 마감했고요, 마지막 날이에요. (···)
수료증이 나오냐고요? 네 발급 받을 수는 있죠. (···)
네? 그 수료증에 찍히는 날짜가 언제냐고요? 음… 이번 학기 졸업이면 8월 15일로 찍힙니다.”

직원분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나를 본다. 나도 그를 본다.

“우선은 들어가 보세요.”
“네?”
“네, 지금은 바쁘니까 들어가 보세요.”

직원의 표정을 보았다. 눈동자를 여기저기 돌린다. 이해했다. 랩 실로 돌아간다.

랩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전화가 오긴 왔으나 정확히 무슨 말을 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확실한 건 내가 낸 서류를 되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모른다. 오늘까지는 두고 봐야 한다.

오후 7시, 공식적인 행정 업무는 끝난 지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행정실은 학기 초 처리할 일이 많아 7시 넘어서까지 근무를 한다.

띠링 띠링 띠리링…

다시 행정실 문을 연다. 졸업 담당 직원이 혼자 남아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오셨군요. 아까는 사람이 많아서 차마 더 물어보지 못했어요. 눈과 귀가 너무 많아서 말이죠.”

“네, 감사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간단히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지금 나는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랬군요… 참, 이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가는 경우는 없는데…”

“그래서 교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뭐 크게 별건 없었어요. 수료 제도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필요한 게 뭔지 뭐 이것저것”

“혹시 제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나요?”
“음… 오늘 마감이라니까 더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혹시 나중에 제가 낸 서류를 빼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요, 이미 제출한 서류는 이미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어요.”

“행여나 나중에 학과장께 최종 승인받을 때 까지도요?”
“뭐 정말 원하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방법이에요. 그러면 교수님도 자신의 이미지를 다 걸고 한다는 건데, 교수들 사이에서 좋을 리가 없죠.”

하긴 가 최고로 아끼는 것이 평판인데, 이를 걸만큼 내가 가치 있는 상대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이럴 일은 없겠죠?”
“그런 걸 요청한다 해도 저희가 그렇게 하지 않아요. 학생은 이제 가만히 있어도 수료가 돼요. 수료 조건은 재학 기간 빼고 모두 만족시켰어요. 그리고 재학은 등록금만 내면 자동으로 되고요.”

“네, 감사합니다.”
“안타깝네요.”

“뭐… 잘 기억해 주십시오.”
“이젠 어쩌실 거에요?”
“쉬면서 알아봐야겠죠.”

“네, 잘 가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행정실을 나온다. 는 내가 해당 서류를 오늘 냈는지는 몰랐던 거 같다. 아니 직원이 내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면서 이를 피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가 내 이름을 언급했다면, 그건 선을 넘는 행위이다.

랩으로 돌아온다.
많은 사람이 퇴근했다.
조용하다.

곧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