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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덕쟁이 문지기
Feb 23, 2018
4 minutes read
* 주변인들이 겪은 일들을 재구성하여 집필하였음을 명시합니다.

다음날 오전, 모니터 오른쪽 위를 본다. 5분 전이군.

좀 있으면 와 미팅을 한다. 아… 긴장된다. 이성에게 고백할 때 보다 더 떨리는 이 마음 어찌 달래야 하나. 응? 잠깐. 고백해 본적이 언제였지?

어젯밤 온 의 답안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따로 작성하여 메일을 이미 보냈다. 그리고 너의 졸업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미루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1. 네가 석박에서 석사로 과정을 바꾸었다는 점.
   2. 너의 논문이 아직 만족할만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

에게 더 중요한 이유는 1번이다. 하지만 1번만 쓰면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원론적인 이유를 추가함으로써 어차피 사정이 이러하니 졸업을 유예시켜야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은 거다.

차라리 2번 이유만 말했으면 내가 좀 더 노력하여 졸업해야겠다고 고민을 했을 거 같다. 하지만 저 두 가지 이유가 합쳐지면서, 논문 작성을 완벽하게 할지라도 졸업을 미루어야 한다는, 사실상 이번 학기에 졸업은 없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런 대답을 예측 못 한 것은 아니나, 손이 떨려왔다. 정녕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는 것인가! 불안이 덮쳐왔다. 몸이 떨려왔다. 움츠러들었다. 열이 났다. 아, 몸살이 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떨기를 30분, 몸과 마음을 진정하고 메일에 답장하였다.

그럼 언제로 졸업 일정을 작성해서 보내셨나요? 저에게도 총괄에 보내신 파일을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는 답장하지 않았다.

는 아마 미팅에서도 졸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일체 피할 것이다. 는 예전부터 이런 형태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피해왔다. 그러다 다른 쪽에서 언급하면 ‘지금 그게 중요한 거냐’면서 최대한 일정을 미루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론의 관심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국회의원들처럼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끌어 논문 자격시험 제출 기한만 넘기면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이 졸업을 미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2분 전이다. 논문과 과제 서류들을 갖고 의 사무실로 간다. 문을 두드린다.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어~ 들어와.”

논문과 과제 관련 미팅을 시작한다. 현재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 할 일들을 언급한다. 그렇게 미팅의 주요 내용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래 그럼 잘 했고, 다음 미팅을 3월 8일로 하자. 가봐.”
”…”

의 눈을 5초간 바라본다.

말해라. 말해야 된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말이다! 어서 말을 해라! 하지만 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무슨 할 말이 더 있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끝이다. 마음이 아프다.

“제 메일에 답변을 주지 않으셨더군요.”
“어… 어.. 어.. 그 그.. 그래. 음… “

가 입술을 떤다. 데헷. 너도 긴장했구나?

“그래서 언제로 기록해서 보내셨나요?”
“어, 어… 19년 2월로 작성해서 보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제 생각과 많이 다르군요.”
“아니, 근데 네가 석박에서 석사로 바꾸었잖냐. 그건 나에게 큰 손해야. 난 5년 생각해서 널 뽑았는데 2년 밖에 없으면 3년이 손해지 않냐. 그리고 네가 바꾸겠다고 한 거니까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런 말씀은 처음에 석사로 바꿀 때 말씀 안 하셨잖아요. 거의 1년 전에 말씀드렸는데 인제 와서 마지막 학기 때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아니, 어차피 논문이 완성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아직 논문 제출일까지는 2달 이상이 남아있습니다. 그때까지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가서 완성이 안 되면 제출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 정도 갖고는 남은 기간에 완성될 게 아니라니까.”

“현재까지 계획들을 방금 미팅에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해 알겠다고 하셨고요. 이 부분이 끝나면 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만족할 만한 contribution이 없는 거 같다.”

“그래도 한 번 더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난 분명 이유를 말했다. 너야말로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다음 미팅 전에 이 부분을 결정해야 합니다. 3월 7일이 자격시험 신청 마지막 일입니다. 그럼 미팅 날짜를 좀만 앞당겨서 3월 6일로 하고 그때 다시 이야기해보는 게 어떨까요?”
“아니, 이미 이유를 말했는데 이해를 못 하는 거 같군.”

“교수님!…”
“아니 너의 논문을 서밋해서 리젝이라도 먹은게 있으면 졸업을 시켜줄 수 있어.”
“리젝이 있으면 되는 겁니까? 아직 기간이 있습니다. 그정도면 ‘어쩌구저쩌구’ 학회에 서밋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리젝당한 논문이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래도 내가 만족해야지.”

”… 교수님, 한 번 더 고려해 달라는 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으니 물러가.”
“교수님… 말씀드리지만…”
“나가봐!”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을 나온다. 예상한 바였으나 막상 겪으니 착잡하다. 도대체 와 나는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걸까. 처음부터였나? 단지 지금까지 내가 잘 참아온 것일까. 근데 이젠 참기가 힘들다. 내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곳을 나가거나 아니면 내가 바뀌거나…

랩 의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한다. 랩 사람들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들이 어쩌겠는가. 나 대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디까지나 내 문제다.

밤 10시, 건물을 나온다. 한 발짝 한 발짝 걷는다.

“나가거나 내가 바뀌거나”
“나가거나 내가 바뀌거나”
“나가거나 내가 바뀌거나…”

그렇게 걷기를 30분, 어느새 집 앞이다. 1 하하하… 헛웃음이 난다. 내가 바뀐다고? 그러면 애초에 이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네~ 나는 멈출 수가 없다네~


  1. 연구실과 집은 꽤 거리가 있다. 나는 기숙사에 살지 않고 자취를 하고 있다.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