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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늪
Feb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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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인들이 겪은 일들을 재구성하여 집필하였음을 명시합니다.

나는 지금 의 컨펌 메일1을 기다리고 있다.

장기 과제2를 총괄하는 팀에서 참여 학생의 졸업예정일을 조사하는 메일이 왔었다. 해당 과제의 메인 담당자는 나였기 때문에 메일에 첨부된 엑셀 파일을 열었다. 내 이름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졸업예정일 칸이 비어있다. 이걸 채워서 보내면 되는 거였다.

아, 맞다. 그리고 우리 랩에 속해있는 다른 학생들의 졸업 예정일도 채워야 했다. 하나하나 입학 일자를 따져 나머지 사람들의 졸업 예정일도 채우고, 총괄팀에게 이와 같이 전달할 것이니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메일을 교수한테 보냈다. 지금 기다리는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컨펌 메일이다.

그런데 내가 채운 대부분 학생은 자신들이 지금 이 과제에 참여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교수가 자신들도 모르게 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제 참여자로 이름을 올리면 지원금이 나오고, 이를 인건비로 학생들에게 줄 수 있다. 3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논의 없이 진행되기에 대부분의 랩 학생들은 자신의 인건비가 어디서 나오는지 정확히 모른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모른다기보다는 무관심하다가 맞는 말이다. 관련 서명을 받기 위해 서류들을 가져다 보여줘도 학생들은 기계처럼 그저 자기 이름이 있는 곳을 찾아 그 위에 서명할 뿐이다. 바로 옆에 내가 적어놓은 회의 내용과 미팅 내용 이런 것들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래 봬도 꽤 정성 들여 썼는데 한 번이라도 읽어주지… 종잇장을 넘기며 이미지를 스캔하듯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그 옆에 서명한다. 잘 학습된 신경망 모델이다. 역시 신경망은 잠재력이 크다.

나도 처음에는 인건비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몰랐다. 입학 초기에는 장학금을 받는 식으로 인건비가 나왔고, 그에 필요한 서류만 작성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받는 금액의 숫자가 불규칙한 것을 보면서 이 점이 수상쩍게 느꼈다. 그래서 직접 행정실에 물어보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이름조차 생소한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공범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는 이러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물어도 대답을 피해왔다. 오히려 는 나에게

“그래서 문제 삼을 생각이냐? 랩을 위한 건데? 넓게 보면 우리 다 같이 연구하고 있는 거야.”

라며 나를 배신자 취급했다. 아, 그래 넓게 보면 다 나라 위해서 열심히 한뜻 모은 거 아니겠습니까. 4 하아… 갑자기 썩은 내가 난다. 는 어차피 인건비를 써야 해서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놈의 어차피 써야 하는 돈 논리다. 아, 그래 뭐, 어차피 우리가 안 쓰면 다른 랩에서 더 욕심을 부려 인건비를 가져가려고 하므로 그럴 바에는 우리가 취득하는 게 맞다는 전략 때문이겠지. 뭐… 이 과제는 정부 출연 과제여서 우리의 세금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망할 만큼 우리나라가 돈이 없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여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서울대니까! 그 정도 자격은 되니까!

지금까지 정부 과제를 둘러싼 랩들의 카르텔을 들여다보았다면, 이다음에 살필 것은 민간 과제이다.

대학원생 대부분은 한 달에 받을 수 있는 돈이 석사 과정의 경우 최대 180만 원 (박사 과정의 경우 250만 원)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인건비”로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180/250만 원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연구원5들은 “연구수당”6이라는 것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7 그러나 교수들은 이를 명확히 말하지 않고 180/250만 원이 최대라는 것만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많이 주고 싶어도8 이 이상을 줄 수 없다, 현 제도 상황에 대해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정부 과제에서는 받아 갈 수 있는 연구수당의 금액에도 규칙과 한계가 있다. 이는 교수나 학생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간 과제에는 규제가 비교적 자유롭다. 9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정부 과제는 학생들의 인건비를 지급하는 용도로, 민간 과제는 자기가 연구수당을 버는 용도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이익이다. 근데 학생들이 자신에게도 더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곤란하니, 정보를 자신의 입맛대로 공개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러한 제도를 일일이 알기는 어렵다. 애초에 학생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알려주는 곳도 없으며, 이를 알아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 연구수당을 배분하는 모든 권력은 교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정리하면,

  1. 감사도 많고 돈도 제한이 있는 정부 과제는 학생 인건비를 주기 위해서 최대한 많이 넣는 식으로 운영하고,
  2. 민간 과제는 자신에게 효율이 제일 높은 이득이므로 최대한 많이 하고 참여하는 학생에게 제도적으로 안 줄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연구수당을 받게 만들고, (보통 월 10만 원. 백만 원 아니다) 그 나머지 연구수당은 최대한 자신에게 배당하도록 과제를 계획한다.
  3. 과제를 많이 하면 돈을 더 받아야 하는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에 제한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여서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4. 그리고 네가 알면 어쩔 건데?

이렇게 하면 민간 과제를 하면 할수록 교수는 그대로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그렇기에 내가 속한 랩에서는 한 사람당 최소 2개의 과제를 진행한다. 한 과제당 보통 격주로 미팅을 하니 매주 과제 미팅을 준비하는 식으로 운영이 된다. 그 와중에 조교를 병행하고, 학업도 같이 병행해야 하며, 개인 연구도 진행해야 한다. 거기다 과제 마감 때가 다가오면 과제를 발주한 쪽과 교수, 양쪽의 압박을 받으며 다른 할 일을 모두 버리고 과제에만 집중해야 한다. 급할 때는 과제 참여 안 하는 학생을 넣기까지 한다. 말 그대로 추가 업무다. 아, 과제가 끝날 때쯤이면 이미 다음 과제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다. 그래야 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월평균 4000만 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월급은 복지수당이다.

이쯤 되면 서울대 공대만큼은 표어를 Pecunia Lux Mea10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민간 기업이 과제 맡아 달라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서울대 공대에서 대학원생이 당하는 착취 방식 중 하나다. 늪이다. 민간 업체들은 고급 인력들과 컨택하여 좋은 브랜드 이미지 쌓고, 후에 업체로 오게 하기 위한 투자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과제를 하면 할수록 대학원생들은 그 기업을 가기 싫어지고 교수 배만 불린다.

그렇다!

  • 연구생들의 노력을 갖다 바쳐도 그들에겐 아무런 권리도 없는 곳.
  • 오히려 정당한 권리를 은혜로써 감사해야 하는 곳.
  • 중세시대 봉건제도의 농노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의 체험 현장. 11

이곳이 바로 서울대 공대다!


  1. Confirmation Email, 결재를 이메일로 받는 경우를 말한다. [return]
  2. 회사로 치자면 프로젝트성 일감 [return]
  3. 속칭 이름 올리기 [return]
  4.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 나라 위해서 열심히 뜻 모은 것 아니냐” - 최순실 [return]
  5. 연구를 하는 모든 사람들. 교수, 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외부 연구원 모두 포함이다. [return]
  6. 일종의 보너스, 성과급 같은 개념이다. [return]
  7. 6-가-(1) 서울대학교 산학협력연구 연구비 산정기준 http://snurnd.snu.ac.kr/web/www/rnd_01_03_03 [return]
  8. 실제로 최대로 주지도 않지만 [return]
  9. 지원기관과 함께 연구수당 금액과 별도의 지급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return]
  10. ‘돈은 나의 빛’. 원래 서울대 표어는 Veritas Lux Mea 로 ‘진리는 나의 빛’이다. [return]
  11. 각 랩은 독자적으로 교수의 재량껏 운영된다는 점에서 봉건제도와 비슷하다.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