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7. 집으로 가는 길
Mar 6, 2018
2 minutes read
* 주변인들이 겪은 일들을 재구성하여 집필하였음을 명시합니다.

오후 2시경, 주렁주렁 짐을 싸매고 랩을 나온다. 랩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서 있다.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여러분, 이렇게 일찍 가게 되어 당황스럽기도 하네요. 솔직히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을 몰랐는데 말이죠…”

한 번씩 눈을 마주친다. 참 좋은 사람들인데…

“여러분, 예전에 랩에 기부했던 ‘권리를 위한 투쟁’ 책에 이런 말이 있어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부당함이 있다면 꼭 표현하세요. 이기고 지는걸 걱정하지 마시고 그게 바로 잠자는 것이니까요.”

씁쓸하다.

“모두 고마워요. 여러분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결과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모두 무사히 학업 마칠 수 있기를 바랄게요. 안녕~”

건물을 나선다.

먼지도 없이 날이 맑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줘야 나갈 맛이 나지.

내가 가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내가 속해 있던 랩은 두 개의 사무실을 쓰고 있기에 나머지 한 곳에 인사를 하러 간다. 거기에는 난감한 분이 한 명 있는데 바로 의 아내다.

의 아내는 저번주부터 방문 교수로 지내고 있다. 보통 사무실을 따로 쓰기 마련인데1 랩 사람들과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다. 이유는 뻔하지 않겠는가. 사무실을 쓰면 돈이 들고, 학생들에게 일종의 ‘내가 지켜보고 있다’를 인지시키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둔 것이겠지.

서로의 논문도 챙겨주느라 고생이 많다. 다른 말로 실적 챙겨주기다. 아, 그 고생은 물론 랩 사람들이 한다. 최근 몇 년간의 그녀의 논문에 우리 랩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것이 많다. 메일 몇 번 미팅 몇 번 문제 되지 않을 정도의 구색을 갖추고 교신저자에는 의 이름을 그녀는 공동 교신저자(co corresponding author)로 하여 논문을 올린다. 논문을 쓰면 한 번에 교수 2명의 실적이 올라가니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

는 그녀가 어떻게든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이쯤 되면 가족 사업이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겠네요.”
“네, 안녕하세요.”
“근데 바로 헤어지는 거라 느낌이 이상하긴 하네요.”
“네, 저희 남편이 좀 자기주장이 강하고 학생에게 요구하는 스탠다드가 높아서… 하하 이렇게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네요.”

뭐 성격은 반대인 거 같네. 하지만 가치관은 똑같군.

그녀를 바라본다. 할 말이 많으나 하지 않기로 한다. 뭐… 이제 와서 어쩌리. 나중을 위해 남겨 놓을 뿐이다.

나머지 분들께도 인사를 드린다. 응원과 안도 그리고 걱정의 말들로 나를 위로해 준다. 좋은 사람들이다. 이렇게까지 나를 신경 써주다니, 다 여러분 덕택이다.

건물을 나온다. 터벅터벅 내려간다.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써 내려가듯이 걷는다. 중간중간 지나쳐가는 학부생들과 사람들을 본다.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있지만, 서로의 분위기는 너무 다르다.

집으로 가는 길.
얻은 건 없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되찾았다.

3월 6일, 나는 랩을 나왔다.


  1. 학교에 요청하면 준다.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