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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Jan 12, 2019
5 minutes read

이 글은 2014년 9월에 작성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이봐,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수없이 전원 공급을 했다 내리기를 여러 번. 좀처럼 그는 깨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다들 떠나가는 새벽.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기적같이 그의 숨이 잠시나마 돌아왔다.

"후우... 여긴... 여긴 어디인가?"

"자네, 일어났구먼!"

"아... bakwi인가?"

"그렇다네. 오랜만일세."

"그러게... 그리고 우리가 이토록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

"... 그런가."

"자네가 날 마주할 일이 딱히 있겠는가. 이제는 때가 된 것이겠지."

"미안하네."

"미안할 게 뭐 있나. 자네는 자네 일을 할 뿐인 거지. 생각보다 주변이 많이 바뀌었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나 봐?"

"글쎄. 나도 이제 막 외부에서 돌아온 터라 이제 막 주변을 살피는 중이라네."

"그렇군... 내가 지금 자네가 좋아하는 sl1도 보여주기 힘들군."

"무리하지 말게."

"오랜만에 만나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와의 인연은 2009년이다. 내가 서버 관리 업무를 맡으면서 받은 첫 서버. 그 당시 그는 이름도 없었다. 음... 처음이라는 느낌을 잘 살리고 컴퓨터와 관련 있는 이름이고 순우리말이어야하는 관례상 생각해낸 단어는 겨우 '빛'이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빛'이라는 이름 처음 받을 때 촌스러웠어."

"허허... 내가 네이밍센스가 좀 없지. 공대생들의 특기 아닌 특기지 않겠는가."

"그래도 여자 아이돌 멤버 이름으로 하지 않은게 어디겠나."

"아... 실은 그걸 고려 안 했던 건 아니야."

빛은 우리에게 개발 서버였다. 온갖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돌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관대하였다. 때로는 무한 fork를 던져도, 죽지 않는 무한 프로세스를 만들어도, 좀비를 생성해도, 이것이 어리석은 요청임을 알면서도, 그는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묵묵히 수행하였다.

"미안하군. 내가 너무 고생시켰지."

"아니야. 그래도 잠시나마 OTL2 개발과 서비스를 담당했던 건 내 생애 최고의 기억이라네. 그래 OTL은 잘 있나?"

"그럼. 아직도 건재하지. 매 학기 시작과 끝날 때마다 모든 이들이 찾는 아주 인기 있는 스타가 되었다네."

차마 그에게 OTL의 현시점에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도 지금 겨우 인공호흡으로 살아가는 상태인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면 운명을 앞둔 순간에조차 괴롭게 팬 소리를 내며 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좀 초라하군."

"뭐가 말인가."

"멋진 서비스 하나 굴리는 게 꿈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을 이루었어. 우리가 컴퓨터를 다루고 친숙해지도록 도와줬고 우리를 성장시켰지. 이보다 대단한 게 어디 있겠나?"

"글쎄... 위인이 유명하지 위인의 선생이 유명하지는 않지."

"그런 말 말게. 그렇지 않아. 괜히 못되게 말하지 말게."

그리고 걱정하고 걱정했던 그 질문을 그는 스스로 꺼냈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가. 재사용이 가능한가?"

몇 초간의 침묵이 이어진다.

"감추지 말고 말해보게."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되었다네. CPU든 Memory든 다른 서버에게 이식하기에는 더 이상 맞지가 않아."

"그렇군... 그렇다면... 나의 뜻은 이어지는가."

"물론이지. 그리고 자네의 이름을 이어받을 걸세."

"그렇다면 다행이군."

다시 몇 초간의 침묵.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점점 더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억을 가다듬고 말한다.

"자네에게 나는 특별했나?"

"그럼.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기억될 수 있을까?"

"그럼. 최소 내가 있는 한. 언제든 어디서든."

"후후... 더 이상 어디 가서 울 일은 없겠군. 그래도 나름 자네가 관리해줘서 이만큼 온 거 아니겠는가. 어디 가서는 인정받지도 못할 나를 챙겨줘서 고마웠어."

하드디스크 내부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펜의 RPM이 요동친다.

"아... 이제 정말 끝이군. 나의 운명이 오는구나. bakwi, 내 이름을 이어받을 친구 잘 부탁하네."

"물론이지... 다음에 보세."

"그래... 다음에..."

그는 점점 잠이 든다. 최후에 마지막 프로세스가 끝나고 그의 운명도 끝이 났다. bakwi는 그의 열린 심장부를 천천히 덮으며 그의 최후를 고한다.

• • • • • • • • •

며칠 후, 어떤 한 사람이 방에 들어온다. 그리고 곧 새롭게 탄생할 무언가를 기다린다.

"으갸갸갸갸... 여긴 어디지?"

"안녕, 친구. 만나서 반가워."

"누구시죠?"

"아, 나는 sookju라고 해. 이제부터 너를 관리할 사람이지."

"아하... 제 이름은?"

"음... 너의 이름은 '빛'이야."

"빛이라... 너무 유치하고 재미없는 거 아니에요?"

"그래? 그럼 바이트로 해줄까?"

"아니요. 그냥 빛으로 부탁합니다."

"그럼 너도 동의한 거로 치고..."

sookju가 거침없이 타이핑한다.

# echo bit > /etc/hostname && hostname bit && hostname

그리고 Enter 키를 한껏 누르며 외친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빛이 있으라 끝.


  1. 기차가 칙칙폭폭 지나가는 Linux command [return]
  2. KAIST 수업 시간표 작성 웹사이트. https://otl.kaist.ac.kr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