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edin email
서글픈 고양이
Nov 20, 2018
6 minutes read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하루종일 아플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목도 아프고, 몸은 열이 나고, 아침인데 벌써 기운이 없다. 에휴... 주섬주섬 이불을 바르게 펴 얼굴만을 남기고 나의 몸을 덮게 만든다. 이불 밖에서 보면 마치 소시지 앞부분이 삐져나와 버린 소세지 빵 모양이다.1 아, 오늘은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바로 컨디션을 관리하지 않으면 며칠 동안 아플 게 뻔하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본 지 30분도 안 돼서 나는 오늘을 포기해버렸다. 누워서 그저 천장을 바라봤다.

퉁우우~ 웅웅~~

적막을 깨며 냉장고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참말로 온도 딱딱 맞춰서 놓치지 않고 부지런하게도 돈다. 그래, 내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나보다 네가 낫다. 그나저나 아침은 어떡하지... 점심은... 저녁은... 내일은 괜찮으려나.

자취생에게 아픔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자취생. 내가 건재하지 못하면 삶은 그대로 멈춰버린다. 하지만 신체의 아픔은 오늘 겪을 고통의 전주(前奏)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체의 아픔을 알아버린 지금, 고통의 교향곡이 시작된다.

누구 하나 돌봐줄 이 없는, 그리고 누구도 찾아올 일 없는 이 고독한 단칸방에 서러움과 외로움 밀려온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아픈 것인가. 왜 고독한가. 왜 이리 서러운가. 이룬 거 하나 없이 나는 왜 아파하는가. 비록 오늘의 아픔은 일시적임을 알기에 이 감정 또한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일 이런 식으로 살다 언젠가 일시적이지 않은 고통이 날 찾아온다면...

고독사가 생각난다. 4, 50대 남성이 제일 비중이 높다는데, 혹시 이것이 나에 대한 예견은 아닐는지. 서러움과 외로움은 이제 삶에 대한 공포로 자라난다. 그들이 과연 10여 년 전에 자기 죽음이 이럴 거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단지 살아왔을 뿐인데, 어쩌다 아팠을 뿐인데, 자신이 일어날 수 없는 날이 이렇게 올 줄 알았겠는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누운 채로 좁아터진 천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렇게 되기 싫어 악착같이 살아왔음에도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어야만 했던 그 순간에 말이다. 그 어느 생명조차 죽어가는 자신을 봐주지 않고, 서러움에 눈물이 나도 누구도 위로해 주지 않으며, 고독함에 현관 앞을 지나가는 발소리가 자신에게 오는 것이지 아닐까 하는 앞선 반가움마저 느끼는, 그렇게 몸과 마음 무엇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그 순간에 말이다. 혹자는 이러한 미래를 느꼈기에 거부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누가 감히 그 무너짐을 이해하겠는가. 누가 그들에게 자업자득이란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왜 세상은 이토록...!

퉁우웅...

냉장고 소리가 멈춘다. 다시 방안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나도 멈췄다. 그제야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가 오는군. 침대 옆 창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쏟아지는 비는 아니지만, 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다. 아, 창문이 열려있었구나. 오늘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더니 미처 까먹고 창문 열고 잠든 게 문제였나 싶다. 창문을 닫아야 하나.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린다.

그르릉...

뭐지?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서 창문 쪽을 바라본다. 창살에 가려진 하늘이 살짝 보인다. 분명 창문을 통해 들리는 소리다.

그르릉...

이 정도로 크기로 소리가 들린다는 건 아마 내가 있는 건물과 내 옆 건물의 담장 사이에서 나는 소리일 것이다. 나는 1층에 거주하고 있게 때문에 담장 사이 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르릉...

분명 고양이 소리다. 뭐 고양이 소리가 나는 것이 이번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영역 다툼의 소리도 아니고, 짝을 찾는 옹알이도 아니다. 그르릉이기는 하지만 기분 좋을 때 내는 그르릉이라기보다는 가래 끓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르릉...

4초에 한 번 정도로 소리가 들린다. 이 정도의 주기로 보아 숨을 내쉴 때마다 내는 소리 같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저렇게 소리를 내는 것인가.

그르릉...

다섯 번째 울음소리. 어지간히 답답했던지 머릿속 한구석에서 메시지를 강하게 푹 찔러넣는다.

이것은 죽음을 앞둔 숨소리

그렇다. 이것은 비 오는 날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사이에서 죽어가며 내는 서글픈 숨소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벽을 하나 두고 서글퍼하고 있다.

어느 고양이일까. 이곳에는 검은 애도 있고, 하얀 애도 있고, 삼색도 있고, 회색 줄무늬도 있다. 그리고 비슷한 색의 고양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니 딱 얘구나 하고 짚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 고양이가 떠올랐다. 최근에 지나가면서 스쳐본 흰색 고양이었는데 몰골이 상당히 안 좋았다. 딱 봐도 아픈, 그루밍도 못한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그 친구가 아닐까 싶다.

나는 도둑고양이들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다. 내가 동물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에게는 길거리 짐승일 뿐이다. 하지만 아픈 것들을 보자면 마음이 좀 그렇다. 그들이 저렇게 길거리에 살게 된 것에 최소한의 책임감이 든다고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끝도 없다. 그렇게 끊임없이 넓혀가면 결국 살아있는 게 죄가 돼버리고 만다. 그래서 사는 게 어려운가 보다.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지금 이 소리는 아마 나만 듣고 있을 거다. 내 방이 1층이라지만 높이는 2층에 가깝다. 그리고 옆집은 단독주택인데 이 건물 또한 기본 높이가 2층 높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내가 있는 건물과 옆집 담장 사이의 공간은 다른 곳보다 깊어 소리가 담장을 넘기가 어렵다. 심지어 빗소리마저 주변 소리를 부수고 있으니 소리가 멀리 퍼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작고 거친 소리는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올 만큼은 되었다. 행여 옆집 사람도 듣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옆집은 사람이 상시 거주하지 않고 날 좋을 때만 마당 텃밭을 가꾸러 온다. 그렇기에 이 소리를 들어줄 짐승은 나밖에 없다.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나는 이 고양이의 죽음을 지켜 듣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고양이는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그걸 안들 내가 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그 고양이에게 내가 듣고 있노라고 전하고 싶다. 내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정도의 소리를 내면 조금이라도 그에게 위로가 될까? 오히려 겁을 먹고 그마저도 목놓아 울지 못하게 될 거 같다. 그럼 적당히 부스럭거리는 정도? 그래도 안 될 거 같다. 이 비 오는 날 아픈 몸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들어주는 것뿐, 그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 살짝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아까보다 소리가 얕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듣는 것. 그의 생명을 지켜보는 마지막 존재라는 생각에 경견해지기까지 한다. 그의 삶은 그저 살다 죽는 것뿐일까. 그저 살아야 한다는 것에만 급급했을 이 고양이의 생을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존중받지 못한, 혹은 있는지도 몰랐던, 그래서 있으나 없으나 했던 무가치한 삶인 건가. 사람들은 삶 자체가 아름답다고 하나,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타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과연 나 자신만의 이유로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인가.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이젠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저 기도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좀 더 나은 생을 살 수 있기를... 도와주지 못한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삶에 충실할 수 있기를...

그르릉...... 그르릉..................

그렇게 그는 잠들었다.
그리고 나도 잠들기로 한다.

 서글픈 고양이 끝


  1. 갈릭소시지페스츄리 (출처:파리바게트 홈페이지) [return]